타국에 새겨진 한민족의 발자국

일제의 핍박 앞에 한인은 대한을 떠나서도 대한을 열망했습니다 나라를 떠난 민족의 흔적을 찾아, 한인이주사
연변조선족 자치주 건설, 중국 조선족

1800년대 흉년에 이주한 농민들이 대다수였던 중국 동북부 한인사회는
일제의 식민지통치 기간 한인 인구이동이 급격히 증가하여 확장되었다.
1910년대에는 수탈을 피하고자 한 농민과
해외에서 활동하고자 한 독립운동가들이 이동인구의 주를 이뤘다면,
1930년대는 중국 동북지역을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일제의 계획 아래 한인의 집단이주가 이뤄졌다.
그 결과 1930년 60만 명에 달했던 한인 인구가
1940년 145만 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 조선족출신의 중국 인민회 조남기 부주석

  • 간도로 쫓겨가는 한인들

조선족출신의 중국 인민회 조남기 부주석 간도로 쫓겨가는 한인들 @국가기록원, e영상역사 제공
처절한 민족 수탈의 상처, 재일한인

재일한인은 일제가 나(부모)를 강제로 끌고 와 착취했다는 역사적 인식으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모국과 거주국(일본)의 관계를 정립한다.
재일한인의 구분 또한 농민층 몰락에 따라 도항한 제1기(1910 ∼ 1938),
강제연행에 의해 도항한 제2기(1939 ~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 후 남게 된 제3기로 나누는데,
현 재일한인의 대부분은 전시산업을 지탱할 노동력 확보를 위해
강제 연행된 제2기 한인의 2,3세들이기 때문이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의해 강제 연행된 인원은 724,787명에 이른다.
여기에 군인 365,263명을 합하면 강제연행자 수는 100만 명이 넘고,
추가로 20만 명의 여성이 동원되었다.
이 중 8만 명 가량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었다.

재일교포모국방문

닫기
  • 전쟁터로 끌려가는 여성들

  •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아들

전쟁터로 끌려가는 여성들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아들 @국가기록원 제공
살을 에는 바람에서, 중앙·국동아시아 고려인

연해주 첫 이주는 경제적 문제로 촉발됐지만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전후로,
독립운동가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조선 내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며 정치망명,
독립운동의 성향을 띈 이주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1900년 27,880명이었던 러시아 거주한인은 1910년에는 54,076명으로 증가,
특유의 근면성으로 한인은 연해주 지역 내 사회·경제적인 역량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일본의 첩자라는 군사적 우려와 낙후된 지역의 개간,
농경지를 두고 본토인들과 경쟁 등의 이유로 강제이주가 진행되었다.
1937년 소련 지도부는 극동지역의 한인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집단 이주시킬 것을 결정했다.
갑작스런 결정으로 재산에 대한 보상,
주거 및 의료 등의 생활 기반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주되었고,
수천의 중앙아시아 한인가구는 소련 집단화 정책의 희생양이 되었다.

영구귀국한사할린고령동포들

닫기
  • 김병화농장 고려인 전통춤 공연

김병화농장 고려인 전통춤 공연 @국가기록원, e영상역사 제공
독립의 빛깔은 새순과 같은 초록, 재미한인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은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의
계약노동자로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101명의 한인들을 실은 최초의 이민선은 1902년 인천을 출발해
호놀룰루에 도착했고, 1905년 일제의 제지에 한인 이민이 중단되기까지
총 7,226명의 한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1910년부터 1924년까지
541명 가량의 청년들이 고등교육을 목적으로 미국에 이주하였다.
이들은 하와이와 미국 본토 한인 사회의 지적・정치적 지도자로서 부상하였고
해외 독립운동을 주도, 광복을 맞이하기 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와이교포관광단

닫기
  • 미국에 있는 무궁화학원 전경

  • 하와이 한인 간담회

미국에 있는 무궁화학원 전경 하와이 한인 간담회 @국가기록원, e영상역사 제공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 중남미한인

중남미로의 한인이주는 1905년 멕시코 이민을 시작으로
1921년 쿠바로 다시 이주한 제1기 (1903-1921),
1920년대 소수의 일본국적 조선인(장승호와 김수조 등)들과
1956년 반공 포로들의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이민 간 제2기(1922-1956),
1963년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의 집단 이민 제3기(1963-1971),
1972년 서독에서 광부 또는 간호원으로 일했거나 베트남에서 계약 노동자로
일했던 사람들이 남미국가로 불법 입국한 제4기(1972-1980)로 구분된다.
쿠바 이민자의 경우 1956년 쿠바혁명 이후, 남한사회와 미국한인회와의
교류가 단절되며 한민족으로의 의식과 생활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오늘날 중남미 지역의 특성상 정착지가 아닌 선진국가 진입 전
경유지로 인식되고 있어, 중남미 한인사회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 근대 한인이주와 인천

  • 한국인 농장

근대 한인이주와 인천 한국인 농장 @국가기록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