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장미현 기고문 - 그들이 꿈꾸던 나라

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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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꾸던 나라



                                                            ㈜젠더공간연구소장 장미현



“우리도 사람이다. 우리에게도 자유가 있으며 권리가 있으며 생명이 있다.”


1924년 5월 23일 여성동우회 창립식에서 동우회장 정종명이 외쳤던 창립선언의 일부이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싸워 온 것은 일본에 대한 조국해방투쟁만이 아니었다. 식민지 여성인 그들은 민족차별과 함께 봉건적 가부장제의 성차별과도 싸워야했다. 일제강점기동안 생겨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조선여성동우회, 근우회 등 여성운동 단체들은 독립운동 뿐 아니라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1920년 열여덟 살 허정숙이 벌인 ‘단발 퍼포먼스’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외치던 유림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1924년 여성동우회장 정종명은 여성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 뿐 아니라 교육운동, 노동운동, 항일무장투쟁 등에 헌신했다. 또한, 조선에 남아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남성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졌고, 상해, 블라디보스톡, 하와이 등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곳에서는 그들의 뒷바라지도 담당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전역에서, 모든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이 실시된 1949년부터 2017년까지 서훈된 여성독립운동가는 297명뿐이었다. 2018년에는 60명이 늘어 총 357명이 되었어도 여전히 전체 독립유공자 1만5,180명의 2.4%에 불과하다.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여성들이 수행해온 돌봄역할은 보조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독립운동으로 인정받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3.1운동 이후 10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그들이 꿈꾸던 세상이 되었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 왔을까?


여성독립운동가들이 그랬듯 지금을 사는 여성들도 돌봄의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출산의 해법을 가지고 논쟁을 하고, 일·가정 양립이 필요하다고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임신·출산, 육아, 자녀 교육, 가족 돌봄 등으로 인해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사회인 것이다. 그리고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돌봄노동이 평가받지 못하듯, 여성들이 해 온 돌봄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지 못하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모습을 반복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고 사랑하자는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났고, 혜화역과 광화문에서는 5월부터 12월까지 6차례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있었다. 여성이란 단일 의제로 모인 사실상 최초의 시위이며, 규모로도 역대 최대인 여성 시위였다. 여성들은 ‘여성도 국민’이며, ‘여성에게 안전한 나라’를 외쳤다. 여성들에게 허정숙의 ‘단발’, 정종명의 선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바라던 나라가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민족탄압과 성차별의 이중적인 고충 속에서 투쟁하던 그들은 해방된 나라가 여성과 남성 모두 평등한 나라이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나는 바란다. 여성도 남성도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사람이 성별로, 계급으로, 인종으로, 그 무엇으로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 사람이 하는 모든 노동이 모두 가치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장미현 (주)젠더공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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