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김귀옥 기고문 - 3.1만세운동이 꿈꾸는 사해평등주의의 세상

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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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이 꿈꾸는 사해평등주의의 세상


김귀옥/한성대 교수, 역사사회학


3.1만세운동의 정신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해평등주의가 아닐까 싶다. 김구 선생도 주창했던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는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 세계 모든 시민이 평등하고 화해와 융합하자는 의미에서 조선 독립은 민족주의가 아닌 아시아와 세계 평화와 평등에 기여한다고 보고 있다.

3.1만세운동 100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의 3.1만세운동의 기억과 기념은 사실 절음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음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해온 3.1만세운동이 3월 1일에 일어난 곳은 서울의 태화관을 비롯한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등 일곱 지역뿐이다.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강원도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을 꼽으라면 원산과 양양을 들 수 있다. 양양의 <3.1운동 기념비>에도 새겨져 있듯, 양양만세운동은 4월 3일부터 9일까지 전개되었다. 그 지역사람들은 4.9만세운동의 기억을 국가적 기억에 의해 3.1운동으로 얘기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은 양양만이 아니다. 서울을 지척에 두고 있는 강화도 역시 3월 18일 강화읍 장날에 2만여명이 운집한 대규모의 만세운동을 벌였다.

돌아보면 3월 1일을 필두로 한 만세운동은 33인 민족대표의 지시와 명령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다. 고종의 장례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이 혼재된 3.1만세운동은 풀뿌리 독립운동으로 마른 들판에 불이 붙듯 그해 5월까지 지속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3.1만세운동은 100년을 맞이하여 예전부터 널리 사용된 기미독립운동이라 부르거나, 신세대들이 편히 이해할 수 있도록 1919만세운동이라 불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올해 3.1만세운동 기념식 역시 3월 1일 모든 지역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라, 만주 지린의 2.1 무오독립선언, 동경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으로부터 각 지역의 만세운동의 날에 맞춰 기념행사를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또한 이 만세운동은 남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분단이 없다는 특징을 가진다.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났고 남녀, 계층, 세대이나 종교의 구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념의 벽마저 없었다. 실제로 3.1만세운동에는 좌우 구분 없이 함께 참여했다. 3.1만세운동이 있었기에 1926년 6.10만세운동이 있었다. 또한 3.1만세운동으로 인해 1920년대 후반에 좌우익 합작으로 결성된 반일단체인 신간회와 근우회가 탄생될 수 있었다. 신간회는 1930년이면 전국에 140여개 지회 설립으로 확대되었고, 4만 여명의 회원이 활동하였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실제 경험 조사를 했던 양양이나 강화 지역에서는 3.1만세운동의 인맥과 경험이 신간회로 이어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한 예로 강화의 ‘ㄱ’ 은 10대 청소년으로서 3.1만세운동에 참여했고, 20대 청년으로 강화지역 신간회에서 맹렬하게 활약하였다. 그는 해방되어 강화지역에서 친일반민족청산 운동과 새 국가 수립운동을 하면서 친일파에 경도된 미군정에 반대하며 사회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나면서 월북을 했다고 하나 생사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잊혀졌다.

심지어 박헌영의 아내인 함흥 출신의 주세죽은 고등학생때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구금당했고 1927년 신간회와 같은 맥을 갖는 근우회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해방 후 그는 구 소련에 억류되어 오랫동안 생사도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조선희 소설가에 의해 『세 여자』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에서 무엇이 기념되고 기억되어야 하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많은 과제와 미래를 위한 화두가 있지만, 중앙 중심적이거나 편협한 인식을 버리고 개방적이고 화해의 관점에서 3.1운동을 보려는 관점의 회복이 필요하다. 일제 강점기에 온몸과 영혼을 던져 저항하며, 새로운 독립된 세상을 가져오기에 헌신한 사람들을 이제는 이념의 장벽 없이 사해평등주의 정신으로 기억할 때, 우리의 역사가 넓어지고, 미래 지향적 정신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분단을 넘어, 남과 북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와 세계의 시민들과 함께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 김구 선생의 사해평등주의가 아니겠는가?




김귀옥 한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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